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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천 - 홍일표
 나금숙    | 2015·02·11 10:15 | HIT : 1,442 |
맑은 곡조를 따라가는 기쁨


나금숙



뱀이 남긴 것은 밀애의 흔적입니다 어디에 가도 꽃의 언저리를 감도는 붉은 숨결입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냇물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한 마리 뱀으로 당신을 휘감습니다 가끔 반짝이는 웃음소리에 돌들이 물방울처럼 튀어오르고 나는 둥글게 부풀어 오른 만조의 바다가 됩니다

풀숲을 빠져나간 뱀이 허리띠로 감겨 있습니다 진달래 눈부신 해안선을 들고 봄의 옆구리로 향하던 사랑이었습니다 머리 흰 사내였던가요? 파도를 타고 내달리던 미명의 노래였던가요? 동해를 묶은 길고 눈부신 바닷길에서 풀려나오는 푸른 뱀의 무리를 봅니다 수만 마리 불멸의 젖은 영혼들입니다

마침내 멀리 돌아온 길이 하늘로 향합니다 밤바다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산과 바다를 지나 슬픔의 곡절 다하는 허공에 닿습니다 온몸이 붉은 몸부림으로 뜨겁습니다 공중으로 날아간 뱀들이 마른 나뭇가지를 타고 분홍빛 봄비로 내려옵니다 눈 밝은 사행천이 장음의 맑은 곡조로 흘러가는 연록의 들판입니다

   - 홍일표, <사행천> (계간 창작과 비평 2013년 여름호)


밀애의 흔적? 뱀?
한방에 우리를 선뜻 잡아당기는 싯구입니다. 두 단어가 모두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방탕과 방랑의 본능에 불을 놓습니다. 시 전체에서 주유하고 방랑하는 노마드의 잔상이 묻어나옵니다. 그러면서도 근원인 바다에서 에돌아 흘러온 강물의 일대기를 능선에 서
서 내려다보는 창조자의 관조의 시각이 있습니다. 구불구불 뱀이 기어가는 모양을 닮은 사행천은 산이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야 그 윤곽이 잘 보입니다. 들녘을 감돌아 여기까지 이 물길은 참 멀리서부터 왔습니다. 시인의 혼은 어느새 날개달린 뱀처럼, 기어가다가도 높이 날아올라서 이 구불구불한 강을 내려다보다가 강물이 되기도 하고 노래가 되기도 하고 봄비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자인 나도 함께 그 넓고 깊은 짜릿한 유영遊泳에 동참해봅니다.
왜 시인들은 화가들은 뱀을 좋아할까요? 그만큼 뱀은 풍부하고 복잡한 상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은 남성과 여성의 양성이미지가 있습니다. 태양과 달, 생과 사, 빛과 어둠, 선과 악, 예지와 정념, 치유와 독, 보존자와 파괴자, 영적 재생과 육체적 재생의 양극단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풍요와 남근과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며 다산과 임신의 여성상징이며 강렬한 성적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독자적으로 자기 창조를 (단성생식)하는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시에서는 우로보로스 이미지가 유연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로보로스는 그리스어로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고대의 상징으로 커다란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원형圓形을 이루고 있는 모습인데, 주요한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하게 그의 턱 사이에 꼬리 끝을 물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꼬리 끝을 물어 삼키는 형상입니다. 전자는 정적인 형상으로 완벽과 영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원형은 우주를 안과 밖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것은 신비스런 보호 장벽이기도 하며 한편 영원한 삶의 완벽성을 나타냅니다. 후자는 동적인 형상으로 나선형의 힘을 의미하며 나선형이 보여주는 주기성, 유동성, 변화성, 발전성과 함께 어우러집니다. 이 시는 후자의 동적 이미지를 강하게 발현하고 있습니다.
첫연에서 시적 화자와 동일시되고 있는 뱀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넘나듭니다. 꽃의 언저리를 감돌다가 넓은 들판을 휘감는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뱀인 것입니다. 휘감고 조이는 능동성 안에서 나는 어느덧 반짝이는 웃음소리에 돌들도 튀어오르는 환희를 끌어오며 어느덧 둥글게 부푼 잉태하는 여성인 바다가 됩니다. 시적 화자는 뛰어난 각성에 이른 자들이 남몰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양성兩性을 분명 가졌습니다. 하천에서, 풀숲에서 나는 근원으로 돌아가 해안선을 들고 당신의 옆구리를 파고듭니다. 대상에게 혹은 자아에 도취되어 빠져죽는 줄 모르고 강을 건너는 머리 희어진 애달픈 나의 남자를 향해 부르는 노래를 그 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듣고 있습니다. 우주를 묶고 푸는 여인들의 이 사랑 노래는 불멸의 노래입니다. 수만 마리 불사의 푸른 뱀이 되어버린 불멸의 영혼들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우로보로스의 순환과 생성이미지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멀리 돌아온 물길이 하늘로 향하고 허공에 닿고 허공에서 붉은 몸부림으로 접합되었다가 마른 나뭇가지를 적시는 봄비로 내려옵니다. 우주의 연금술입니다. 시적화자는 드디어 막힘없는 이러한 순환에, 생명율에 눈이 밝아졌고 목청이 틔었습니다. 그래서 남도창처럼 유장한 장음長音입니다. 연록의 들판이 이 깨우침이 즐거워 화답하고 있습니다. 앙리 리페브르가 <리듬분석>에서 말한, 우리의 일상 속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우주적 리듬과 생명의 리듬, 생체적 리듬들 즉, *리듬들의 꾸러미(paquet)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이런 깊이와 통찰 이전에 우리를 동심의 영토로 끌고 가는 미덕이 있습니다. 고향의 시냇가로 말이지요. 맨발로 팬티(빤쓰^^)만 입고 놀았던 그 그리운 시냇가로...
처음 읽을 때 번개처럼 와 닿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행복한 이동, 이 충만감은 좋은 시만이 해낼 수 있는 귀하고 고마운 덕목입니다. 사랑하는 시인들과 좋은 시로 인하여 행복한 여름입니다.


*앙리 르페브르 저著 <리듬분석> 216쪽



계간 <시와 문화> 2013년 가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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