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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시집 <거짓말의 탄생>
 이성목    | 2016·07·01 12:53 | HIT : 1,206 |
                                - 정한용 시집 『거짓말의 탄생』

                                                        이 성 목

1. 거짓말이, 정말

  웃지 못 할 촌극이 있었다. 한때 정한용 시인은 ‘표절’이라는 주제를 가진 ‘표절’의 시를 쓴 적이 있다. 한 시인의 시를 ‘표절’하면서 ‘표절’했다고 시의 말미에 밝히면서 ‘표절’이 어떤 모습으로 어느 범위에 이르는지, 그 모호성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은 ‘시를 쓰는 자’와 ‘시를 읽는 자’들이 광분을 했다. 그가 ‘표절’을 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표절’을 했다고 그가 그의 시에 그렇게 적어 두었다. 그때 나는 그 광분한 ‘시를 쓰는 자’와 ‘시를 읽는 자’의 시력을 의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허물어지는 경계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저항은 ‘진실’이나 ‘사실’이 무엇인지는 관심 밖이었다. 더군다나 ‘시를 쓰는 자’와 ‘시를 읽는 자’가 똘똘 뭉쳐서 풍자나 해학, 역설과 패러디가 일고에 가치가 없다는 듯이 행동해 보일 때는 웃음이 똥구멍으로 피식 새어 나왔다.
  정한용 시인의 시집 『거짓말의 탄생』을 읽는 내내, 그 촌극들이 자주 떠올랐다. 그의 시집 대부분은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그 경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속된 말로 대부분 능청스럽기 짝이 없는 ‘구라’다. 그럼에도 그 ‘구라’들은 끝내 입맛을 쓰게 만든다. 우리 사는 세상이 온통 그의 시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경로로 쏟아지는 뉴스조차도 어디까지 진실인지, 사실인지를 모르는 ‘찌라시’같은 세상이다. 이 세상을 사는 시인의 예민한 촉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의 ‘구라’들이 모두 말할 수 없는 불편한 것들의 진실을 말하려 한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다가 “아무것도 그대로 머무르지 않으며 언제나 하나로 있는 것은 없다”는 구절을 만났다. 이는 “우리의 본질은 내부적으로 무력하고 궁핍하며 그 자체가 불완전하여, 끊임없는 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에 노력해야 할 존재다”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1570년에 쓴 이 글을 읽다가, 나는 너무나 놀랐다. 이럴 수가, 이건 퇴계와 고봉 사이에 오간 편지구절을 그대로 훔친 것 아닌가. 베낀 거잖아.
        (중략)

          퇴계-고봉의 편지 필사본이 일본으로 건너가 프란체스코의 손에 들어갔던 것, 프란체스코가 중국에서 죽자 그의 유품을 제자들이 옮겨 포르투갈로 가져갔던 것. 이를 다시 노스트라다무스가 몽테뉴에게 전달했던 것. 길은 흘러 흘러 필연을 만들었던 것. 세밀한 내막은 알 길 없지만, 몽테뉴가 조선 유학자의 글을 베끼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누가 감히 욕을 하랴. 역사는 오류와 비의로 가득하고, 우리의 삶은 늘 궁핍할 뿐.
                                        -「표절-내력(來歷)」 중에서

  중요한 것은 몽테뉴가 정말 퇴계-고봉의 편지를 베꼈는지가 아니라, ‘역사는 오류와 비의로 가득하고, 우리의 삶은 늘 궁핍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이미 무너지고, 진실과 허구가 뒤범벅되어 소용돌이치는 카오스의 세계로 우리는 이끌려 들어간다. 아니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이 이미 그런 세상임을 알게 된다. 아, 아니다. 모른다. ‘표절’이 아닌 것도 없고 ‘표절’인 것도 없는 궁핍한 세상을 그저 살아 갈 뿐이다.
  이 능청스러운 허구를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짓말이란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방식이며 전략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소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며 의지의 발현이다. 그런데 ‘탄생’이 염원과 의지로만 가능할 수는 없다. 탄생은 지극히 생물학적 유기성의 결과이다. 무엇과 무엇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생겨나는 그것을 탄생이라 정의할 때, 거짓말이란 말 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과 허구라는 형식이 만나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가 스스로 거짓말의 ‘탄생’이라고 명명하는 속내는 말하고자하는 ‘어떤 진실’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청년 백수로 그는 10년을 보냈다.
        깜깜한 시절이었다.
        도서관과 고시원에 파묻혀 하루 20시간씩 매달렸지만
        한 해에 52장의 이력서를 써 갈겼지만
        세상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이후, 부엉이 바위에도 가고, 마포대교 교각 위에서 서성거리고
        아파트 창문을 열고 15층 아래 화단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영자가 ‘안녕’ 한 마디 던진 뒤 떠났을 땐
        약국 스무 군데를 돌며 수면제 40알을 구했고
        면벽 수도하듯 석 달에 걸쳐 한국전쟁 이후 신문을 모두 열람하기도 했다.

        그래서 말이야, 내사 이제서 하는 말이지만서두, 들어보거래이, 신문을 읽는데, 내 참, 그거이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디, 1958년 4월 21일 대한일보 1면 하단에 죄그맣게 난 기라. 티라노. 그때, 내 머릿속에 불이 확 켜진 기라. 기맥힌 일이지. 손톱만한 사진도 났는데, 아마 아무도 기억 몬할 기라.
                                -「티라노 전문 요리사」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그의 머릿속에 불이 확 켜지는 기막힌 일을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티라노 전문 요리사’라는 정말이지 말도 되지 않는 직업을 굳이 말해야하는 ‘청년 백수’의 눈물겨움을 이렇게 밖에 더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시인이라는 자는 응시자이지 해결사가 아니지 않은가. 진실은 1958년 대한일보 기사가 아니라, 미치지 않고서야 찾을 수 없는 일자리가 아니겠는가.
  과장, 축소, 미화, 논점의 이동, 은폐, 왜곡, 의도된 오독 등 거짓말은 세상의 모든 진실을 다르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다. 자본이 그렇고 인간이 그렇다. 그런 불편한 것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 ‘구라’들은 지극히 적절하고 유효한 방식이다. 은폐하려는 것은 드러내고, 축소하려는 것은 과장하며, 비틀고 뒤섞어서 세상에 한 접시 내놓는 티라노 요리를 먹는 짜릿함, 어디서 맛 볼 수 있단 말인가. 그 다른 맛을 좀 더 보자.

        내가, 내가 아니란다, 짝퉁이란다.
        공항 입국 심사대 딱딱한 관리가, 진품은 이미 귀국 했어요.
        아니, 여기 여권에 도장 쾅 찍혀 있잖아요.
                                -「짝퉁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별 ‘캐플러-62f’는 내 불알친구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40 초반에 직장 그만두고 몇 년 정착할 곳을 찾다 거기로 갔다. 1200 광년이나 되니 만나기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작년 봄에 큰맘 먹고 다녀왔다.
                                -「그곳에 가고 싶다」 중에서

        지난겨울은 혹독했다.
        구제역에 조류독감까지 겹쳤다.
        소 15만, 돼지 3백만, 닭 5백만 마리가 매장당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하도시」 중에서

  이미 정한용 시인은 『유령들』이라는 시집을 통하여 집단학살과 그 광기어린 세계를 보여준 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진실은 그런 거대담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그것을 말하는 방식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킨다. 다만 그것을 내 몸처럼 끌어안을 때는 그것이 진실이든 허구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형식의 ‘구라’들은 대상의 응시를 통하여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대상에 대한 치열하고 독한 애정 없이는 찾아낼 수 없는 내면들이다. 모두에게 이번겨울은 혹독했다. 그 혹독함 속에 서 있지 않고서는 혹독함을 모른다. 그러므로 『거짓말의 탄생』이 보여주는 시편들은 세상을 끌어안으려는 방식이지, 그 어떤 허구도 속임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어둠 밖에 서 있다. 우린 이제 저 검은 빛을 밟고 가야 하는 운명적 존재들로 만났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도 말자. 거짓말이, 정말! 이냐고

        연필로 쓴 편지처럼, 혹은
        어둠 속의 외침처럼 우린 만나고 헤어졌다, 하루 그리고 십 년.
        그러니 우리는 수백 번도 더 섞었겠다.
        수천 번도 더 서로의 심장을 움켜쥐고 피 흘렸겠다.
        강이 보이는 넓은 집
        어둠 밖에 당신 서 있다.
        우린 이제 저 검은 빛을 밟고 가야 한다.
        영원의 끝에서 다시 만날지, 묻지 말아야 한다.
                                -「십 년 그리고 영원을 위한 하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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