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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시집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김정수
 김정수  | 2015·12·29 13:21 | HIT : 1,301 |
[시인의 집]

구멍은 다른 구멍을 욕망할 뿐
<28> 정영선 시인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

피어 있는 동안은 향기


내 몸만한 구멍을 어둠 속에 판다
돌멩이를 멀리 던진다
귀가 풍덩 소리를 따라간다
파도 소리가 덩굴처럼 귀를 감아온다

어둠의 뼈에 기대 목을 뒤로 젖힌다
밤하늘 별들의 눈이 퉁퉁 부어 있다
맘대로 연애하고 떠난 여식처럼
궤도를 벗어난 별이 있는 걸까
몇 억 년 너머로 팔을 쭉 뻗어 별 어깨를 감싼다
(하략)


시인은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는 영혼을 지녔다. 바람처럼 세상 속으로 떠났다가 바람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 또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 시인이다. 이번에 세 번째 시집을 낸 정영선 시인(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도 다르지 않다. 시인은 시집의 첫 시에서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오솔길”(‘소실점’)을 걷고, 마지막 시에서 “불두화만한 불빛 맺혀”(‘피어 있는 동안은 향기’) 있는 바닷가 집에 잠시 머문다. 떠남과 머묾의 시간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시로 집을 떠나는 시인은 서울 인사동에서 강화도 외포항, 강원도 구와우 해바라기 밭, 포항어시장, 일본 게곤폭포, 미국 샌디에이고 해변과 뉴올리언스 뒷골목, 터키의 피에롯티 언덕 그리고 지중해까지 떠돈다.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인의 반복행위는 하데스에서 언덕 정상에 이르자마자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거듭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시시포스를 닮았다.

고행인 줄 알면서 시인은 왜 집을 나서는 것일까? 시인이 머물고자 하는 집은 어떤 곳일까? 시 ‘그 집에 두고 왔다’에 의하면 집은 “뜨개질한다고 쭉쭉 당겨 식구들을 감던 무지개 실을 두고” 온, “피아노 피는 손가락을 타고 공상 속에서 내리지 않는 여자애를 두고” 온, “단발머리 아이의 첫 입학식 날 두근거림이 비치고/ 아이 기억에 화인을 찍던 젊은 엄마가 보이는” 곳이다. 시인이 찾고자 하는 집은 행복이 가득했던 유년의 집인 셈이다.

과거라는 물리적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으므로 “새집에서 잠들었는데 벽지가 얼룩진 이전 집에서 문단속을” 하고, “북두칠성 국자로 표시해둔”(‘그 집에 도착하지 못한다’) 집이므로 날마다 길을 떠나도 그 집에 도착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시인이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건 결국 영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함이다.

내 안에 구멍을 파는 자가 있다

행복한 세상으로 가자
‘행복한 세상’에서 찾고 찾은
싸구려 행복은 거절당했다
구멍은 구멍을 넓혀가고 있다

해 아래 새것들이 넘쳐난다
눈 뜨면 새 기호들이 구멍 내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구멍의 구멍을 욕망한다
떠내려간다
내 발로 끝까지 걸을 수 없다
좁은 바지통에서 넓은 바지통으로
해체시에서 회귀하는 서정시로
설왕설래하는 독을 앓는다

구름악기로 신성을 노래해도
둥치에 핀 벚꽃 웃음을 건네도
구멍은 다른 구멍을 욕망할 뿐이다

캄캄 밤이 두른 신음밖에는
비 맞아 녹슨 꿈밖에는
사랑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밖에는
구멍은 구멍을 고백하지 않는다

-‘구멍의 고백’ 전문

“새 기호들이 구멍 내는 세상”에서 벗어나 편히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시인은 터널과 구멍에 천착한다. 시인에게 터널과 구멍은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웸홀(wormhole)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세상’에서 찾고 찾은/ 싸구려 행복”에 거절당한 시인은 자궁 같은 구멍에 들어가 구멍을 넓혀가고 있다.

  ◇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정영선/서정시학/146쪽/9900원

머니투데이 2015-12-19
http://news.mt.co.kr/mtview.php?no=2015121613100785196&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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