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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 나를 울린 한 편의 시] 조상기 _ 後日譚
 이운진    | 2009·06·08 01:26 | HIT : 3,804 |
後日譚 / 조상기








바람은 가지 안에 꽃이 되지만
너무 멀어 손끝에도 닿을 수 없는
내 어린 사랑을 두고,


출렁이는 바다의 물이랑 같이
보채는 나로 하여 몸부림해도
끝내는 닿을 수 없는
사랑을 두고,


오래 전에 우리는 잊어 버리고
잊어서 지금은 남이 된 그들,
낯선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아, 무어라 말을 하면 좋을까.


가만히 제 속 안에 숨을 죽이고
여울로 잔잔히 흔들리는 것
또, 무어라 이름하면 좋을까.


깊은 목에 잠기는
그런 세월의
손금으로 흐르는 피의 냄새를
조용히 가슴 안에 일러 재운 채
내 저승 밖의 둘러리,
노고지리 우는 봄의 아지랭이 속
선한 길이 열리면
꽃 모종하듯 심어 봐야지.


너무 멀어 손끝에도 닿을 수 없는
내 어린 사랑을 두고
바람은 가지 안에 꽃이 되지만.




*조상기시집, 『後日譚』(1977)




********************************




  열아홉, 그때 나는, 실패한 꿈을 안고 집을 떠나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의 변두리에 닿았습니다. 남쪽 지방의 작은 소읍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늘 조금 앞선 아이였지만, 서울은  내게 하루하루를 배설물처럼 느끼게 하였습니다. 혼자서 일어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거미줄 같은 길을 찾아 학교를 가고 그 길을 꼭 그대로 되짚어 돌아오면 불 꺼진 빈 방에서 오래오래 무릎을 안고 어둠 속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밤이면 별빛보다 많은 도시의 불빛속에서 나의 빈 방은 블랙홀 같았습니다. 그 어느 날 밤, ‘서울은 거대한 공중변소 같다’라고 일기에 적어두고 사나흘쯤 학교를 빠진 뒤였습니다. 시론 수업이 끝나고 스승께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시 한 번 써 봐라” 그렇게 스승과의 인연은 단 한마디로 시작되었고, 내가 시를 품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어둡고 깊은 블랙홀의 시간은 시의 문장들로 조금씩 지워져 갔습니다.


  수업 시간에 몰래 읽던 시집을 뺏기고 나면 어김없이 새로운 시집을 건네시며 눈웃음을 얹어 주시던 스승이었습니다. 좋다, 나쁘다는 말씀 대신 언제나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시는 것이 전부였지만, 외롭고 덜컹거리던 마음을 숨겼던 나의 시를 6년 동안이나 읽어 주셨던 스승이었습니다. 때로는 서울을 살게 해 주신 아버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날도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해가 지는 저물녘이었고, 스승과 나는 7층 연구실 창문을 지나는 노을을 보며 골똘한 때였습니다. 문득 스승께선 삼십년 가까이 시를 접고 계셨던 오래고 아픈 상처 하나를 꺼내셨고, 두껍게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낸 시집 한권을 주셨습니다. 한 순간 시를 만나게 하셨던 그때처럼 가슴속에서 꺼내 주신 스승의 첫 시집은 그렇게 내게로 왔습니다. 처음으로 읽는 스승의 시들에선 이십대 스승의 모습이 화석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미련한 제자는 이제야 그 아픔의 깊이를 가늠합니다.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고 끝끝내 가슴에 품고 가신 시를 이제야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내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 “좋은 사람이 좋은 시를 쓴다는 거 잊지 말고 부지런히 써라”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시를 써야할 지의 고민이 들 때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 지를 먼저 생각하도록 일깨워주는 스승의 당부를 감사하게 새깁니다. 요즘같이 다시 시 때문에 좌절하고 슬퍼질 때, 소음과 먼지로 가득한 사람살이가 힘에 겨울 때면 낡은 스승의 시집 한 권을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짧은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스승의 시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여전히 스승은 그곳에 계셨습니다.


***



다음 글은 위선환 선생님께 청합니다.
여전히 시에서 젊음을 잃지 않으시는 힘의 출발이 어디었는지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빈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4-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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