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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정 / 나를 울린 한 편의 시] 윤동주 -병원(病院)
 강미정    | 2009·05·28 13:45 | HIT : 8,410 |
[나를 울린 한 편의 시 16] 윤동주 -병원(病院)


병원(病院)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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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 일인지 나는 깔깔 웃고 있었다. 두레박을 내리면 한참 만에 깊은 물살과 몸 부딪는 소리가 첨벙, 일어나는 그 우물가에서 우물물을 퍼 담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뿡, 방귀를 뀐 고 가시내는 가벼이 물동이를 이고 먼저 가 버리고 나는 남아서 물동이를 들어 올리려다 웃고 들어 올리려다 웃어서 배가 아프게 웃어서 웃음이 다 쏟기고 나면 그만 눈물이 쏟아지는 거였다. 앉은 무릎 위에 올려진 물동이의 물이 다 쏟아지고 마는 것이었다.


  우물물이 내 몸을 지나가고 젖은 내 몸이 지나온 시간 속에는 병원에 누워 있는 내가 몇 있다. 자전거가 내 몸을 지나갔을 때, 자동차가 내 몸을 지나갔을 때, 내 몸 속의 아픔이 나를 지나갔을 때....눈을 뜨면 병원이었던 그 시간 속에서도 뿡, 방귀를 뀌면 병이 다 나았고 밥을 먹어도 된다고 했었다.


  그랬다. 새콤달콤한 노란 설레임 하나가 살며시 나를 찾아 와 주었던 때도 이 웃지 못 할 방귀, 이 망할 놈의 방귀가 낄낄낄 웃었던 시간쯤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아, 그때는 갓 피어나 꽃술만 살며시 열고 있는 산나리꽃 같은 후레아 교복 치마와 두 갈래로 머리를 볼끈 묶은 볼그레한 볼에 주근깨 몇 개 담근 풋풋하고 수줍음 많았던 여고 시절이었다.


  급성맹장염 수술을 한 후, 하루 지나 이틀 쯤 되는 시간 속에 나는 누워 있었고 드르르...륵, 문이 열리며 내가 모르는 한 남학생이 까만 모자를 벗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머뭇머뭇 더듬거리는 발그레한 시간이 말문을 열어 시화전 행사에서 판넬된 내 시를 보았다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시집을 살며시 내게 건네주고 있었다. 건네주는 손이나 건네받는 손이나 떨림으로 파르르 했는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나를 보고는 다짜고짜 오늘은 방귀 뀌었느냐? 몇 번이나 묻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귓불까지 빨개진 나의 손에『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느날, 자전거가 내 몸을 지나가고 어느날, 자동차가 내 몸을 지나가고 또 어느날 나의 아픔이 내 몸을 몇 번이나 지나가서 나를 살리기 위해 내 몸의 일부를 몇 번이나 내 주어야 했던 날들, 저 「병원」이란 시에 나오는 젊은 여자가 나였던 날들, 방금 급성 장염으로 누웠던 침대를 빠져나와 나는 유년의 그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막 퍼 올린 시퍼런 생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고 가시내, 아직도 물동이를 이다가 깔깔깔 웃음을 쏟고 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내 몸을 적신 깔깔깔 물의 웃음! 한바탕 쏟아진다.


*** 이 시집에 있는 시「자화상」,「거울」이 내 마음을 더 이끌었고 마음을 더 절절하게 했다. 하지만, 아플 때마다 이 시가 생각이 났었다. 이 시집은 출판사와 출판년도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사 오면서 다 가져오지 못한 짐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마 1980~1982년대의 것으로 추정됨.  


***  다음 타자는.....깊은 감동의 시를 쓰는 이운진 동인께  이 눈물단지 드립니다...빨리 받으세요...^^  

* 빈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4-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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