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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호 / 나를 울린 한 편의 시 ] 이상 - 이런 시
 빈터  | 2010·03·25 10:03 | HIT : 9,401 |


이런 시 / 이상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내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나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 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1933년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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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접한 게 1985년 즈음이었을 거다. 1985년은 내가 군에서 엄청난 숙제(?) 하나를 안고 제대를 했던 해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고무신 바꿔 신은 여자를 찾는 숙제였는데, 지금이야 식은 추억쯤으로 말할 수 있는 정신이 기특하게도 돌아와 있는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살짝 정신줄을 놔버린 상태여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름까지야 밝히기 그렇고, 아무튼 청담동 언니네 집에 더부살이하면서 학교를 다니던 여자였는데, 정말이지 나른한(?) 여자였다. 뭐랄까, 그녀를 보면 수음의 뒤끝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봄볕에 나앉은 병든 닭처럼 나는 정말 나른하고도 나른했다. 예를 들면, 종로 3가에서였던가? 어떤 사람들이 싸움을 하며, 이런 좆밥같은 새끼! 하던 말을 듣고서는, 삼청공원 벚꽃이파리 휘날리던 벤치에 앉아 내게 낮은 목소리로, 좆밥이 뭐야? 라고 묻던, 나는 그게 거기에 낀 하얀 때를 말하는 거라고 결코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냥 벚꽃아래 나른했다. 그러나 또 어느 순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듯 엄격한 선을 유지하고 은은한 숨소리를 포 내뿜는 그녀는, 말하자면 보다 그런 식이었다.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게 조금은 불만스럽다. 하지만 그 묘하고 나른했던 기억을 무슨 수로 표현하랴. 어쨌거나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마르고 달토록, 굳세게.


그런데 어느 날 감쪽같이 그녀가 사라졌다. 나는 군복무 중이었고, 갑자기 소식이 두절된 연유를 알지 못했다. 아무리 편지를 써 봐도 종무소식. 지금의 통신망에 비하면 그땐 참 엄청난 인내와 체력을 요구하던 시대. 딱 눈 튀어나올 정도의 기다림 끝에 얻은 휴가. 나는 그때 비로소 그녀의 집이 이사 갔다는 것을 알았다. 제대 후, 엄청난 숙제는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서 허망하게 풀렸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문득, 자-알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에 말도 없이. 사람을 나른하게 하거나 당황케 하는 건 그녀의 특기였다. 맥 빠진 걸음으로 교문을 나오다 돌아서서, 에라이, 우리나라 말도 잘 모르면서 유학은 무슨.....그러나 내 이런 외침과는 달리 유학은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갈 수 있는 그런 거였다. 공허했다. 나와 그녀의 학교, 그리고 시퍼런 하늘과 함께.


인생만사새옹지마人生萬事塞翁之馬. 원래 다 그런 거라고, 그래서 역사는 또 흘러가는 거라고,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괴로워하는 것보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하는 게 보다 건설적인 거라고, 친구는 유식하게 위로했다. 그러면서 저 詩를 소주잔에 둥둥 띄워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등신처럼 찔끔,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것들을 자꾸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2년 후던가? 이 시가 실려 있던 시집을 청계천 어느 서점에서 샀다. 아마도 범조사汎潮社에서 펴낸 것으로 기억된다.    


  단속 없이 세월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러 간 춘천 고향집에서 어머니께 한통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색동 띠가 둘러진 항공우편이었다. 문득, 이어도산하이어도산하 신기루 같은. 누구냐 넌? 그녀였다. 증발한지 꼭 팔년이 흘렀는데 마치 며칠 전의 일인 듯 범우주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라인강이니, 로렐라이언덕이니, 중부유럽 정취 등을 적어 보내왔다. 아주 나른하고 당황스럽게. 물론 나는 답장을 보내줬다. 그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전 인류의 생존경쟁에 뛰어들어 코피 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고, 그 와중에도 더러는 그대 생각 꺼내볼 터이니 거기서 내내 어여쁘시라고.......자 그러면 안녕!




유문호 십 수 년 만에 책하나 냈습니다.
<빈터>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연재했던
한뼘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나를 울린 한편의 시’라는 주제로 썼던 글도
소설형식으로 다시 써서 실었습니다.
책제목은 <쿵! 하고 안드로메다>
발행처는 ‘달아실출판사’입니다.
10분이면 됩니다.
그만큼 짧은 소설들입니다.

그래서

전철에서 읽기 딱 좋습니다.
버스에서 읽기 딱 좋습니다.
기차간에서 읽기 딱 좋습니다.
화장실에서 읽기 딱 좋습니다.
지루할 만하면 닥치고 끝내기 때문입니다.
하품 나올 만하면 눈탱이 치고 빠지기 때문입니다.
몇 줄만 읽어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재미는 보장하겠으나
다 읽어도 남는 게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입니다.

그래도 관심 주시면....네?
꾸벅^^;;

18·09·1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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